카프카의 <변신> 속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갑자기 흉물스러운 벌레가 된 모습으로 잠에서 깬다. 스스로 자신의 모습에 적응하기도 전에, 그는 인간의 외관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앞으로 하지 못할 일들에 대해 걱정한다. 방문을 열기 직전에는 “다시 인간의 테두리 안에 받아들여졌다”라고 잠시 안도하지만, 금세 신선한 음식에 메스꺼움을 느끼고 대를 물려온 방 안의 가구가 사라지길 자신도 모르게 소원하며 사람으로서의 과거를 쉽게 소거한다.
2021년 현재에도 원치 않는 변신을 필연적으로 수반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레고르와 같이 자신이 속한 관계 속에서 성실한 직원, 믿음직한 가족으로 자신을 정의해 보지만 그러므로 스스로 재현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오랫동안 주류 사회가 정립한 이미저리에 갇혀있었고 자신이 누군지 발언하기 위해―그조차도 진실하지 못할지라도―다른 사람으로 가장해야만 했다. 주체로 재현될 수 없는 타자, 그들의 이름은 ‘여성’이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한 광고의 유명한 캐치프레이즈가 방증하듯이 우리에게 변신은 익숙한 것이었다. 천편일률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단어를 배제하더라도 사회가 규정하는 이상적 모습에 맞춰 여성의 신체와 성질은 시시각각 변형되어왔다. 반대로 자신을 재현하고자 시도하는 여성들에게는 남성성이 덧입혀지거나 그들 스스로 남성인 채 행세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변신하기 이전 여성의 본질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우리는 탈피해 나와 온전히 우리를 재현해낼 수 있을까.
포스트모던의 흐름 속에서 기표의 폭력에 저항하는 일은 해체라는 저명한 이름으로 이행되어왔다. 여기에 모인 네 명의 작가들도 같은 맥락에서 ‘깨기’에 도전한다. 구지언, 김현지, 정두리, 조은후 작가가 처음으로 만난 날 깨졌다는 컵은 지금껏 우리를 규정해왔던 기표들의 집약이자, 그 모양의 유사성에서 여성의 자궁을 상기시킨다. 네 명의 작가들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표준이라는 영토로부터 탈주하여 여성-되기를 실천한다. 구지언은 여성의 본모습을 감추는 위장의 행위로써 화장을 작품의 주제로 가져왔고, 김현지는 소셜미디어를 떠도는 타자화된 여성 이미지가 개인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해왔다. 정두리는 남성 주체로 인해 금기됐던 여성의 욕망을, 조은후는 신화 속 호명되지 못했던 여성 인물들을 수면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여성성을 재탐색했다.
그렇다면 컵이 깨진 자리에는 무엇이 남아있는지 우리는 살펴보아야 한다.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1956-)는 페미니즘의 주체로서 ‘여성’이 갖는 한계를 지적하고 그 대안으로서 연대를 제시했다. 일관되고 견고한 주체로서 여성을 상정하는 것은 젠더 관계를 무의식적으로 물화하는 것이고 이는 정확히 페미니즘의 목적에 반한다. 그러나 깨진 컵 사이로 흘러나오는 물은 자유롭게 변형되며 언제든 그 목적에 의해 소집되었다 흩어질 수 있다.
네 명의 작가들의 결합도 그러하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작품을 통해 보다 더 자전적인 성향을 드러낸다는 조앤 스나이더(Joan Snyder, 1940-)의 발언처럼 구지언, 김현지, 정두리, 조은후는 개인의 경험에서부터 출발하여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낸다.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일시적으로 ‘여성들’의 이야기를 재현한다. 여자 여(女)자가 모여 간음할 간(姦) 자를 만들어내듯이 우리가 모인 자리에는 누군가가 보기에는 더럽고 간악한 것이 남아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것이 유효함은 적어도 타인에 의해 곡해되지 않은, 그래서 부정될 수 없는 진실한 나의 서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레고르는 결국 가족의 외면 속에 죽음을 맞이했다. 아마도 이는 그가 인간으로 돌아가지 못하자 결국 같은 사회에서 규정한 벌레의 습성에 자신을 침잠시키는 오류를 범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컵은 이미 금이 가고, 이가 빠지고, 깨져버렸기에 비극적 결말로의 경로는 간신히 선회했다. 돌이킬 수 없도록 더 많은 컵을 깨야 한다는 네 작가의 외침은 이윽고 또 다른 컵에 공명을 일으키리라 믿는다.
글_최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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