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0대시절 처음으로 백일장에 나가서 쓴 글은 <솔직히 명품 갖고 싶다>였다. 그 글이 예선을 통과했고 본선에서 쓴 글은 ‘옆집 언니와의 밀애’를 그린 소설이었다. 동성애를 다루며 수위가 높았기 때문인지 당연히 떨어졌다. 어린 시절의 내가 쓴 두 글을 떠올려 보면, 크게 아우르는 주제는 ‘욕망’이었다.
여성으로서 한국사회에서 자라면서 돈과 세속적 욕망에 솔직하지 못하게 만드는 ‘김치녀’프레임의 억압부터, 성적 욕망에 대한 억압, 동성애에 대해 터부 등 모든 욕망을 통제 당하며 자라왔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오며 자연스레 여성으로서의 섹슈얼리티, 젠더에 대한 의문과 관심을 키우며 삶의 주제로 삼아왔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타자화된 주체, 여성으로서의 욕망에 대해 포착하고 이를 가시화 시키는 것이 나의 작업의 큰 주제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며 느꼈던 억압과 편견을 기어코 깨고, 남성적 시각에 구애 받지 않는 욕망에 대해서 작업해 왔다. 여성의 성적 욕망을 가시화 시키는 실험의 일환인 아트북 <젖은잡지>부터, 여성전용 섹스토이샵이자 문화공간이었던 <푸시베리>를 운영하고, 개인작업으로는 다양한 목적의 이미지들을 혼재해 새로운 시각으로 탄생시키는 콜라쥬 작업을 해왔다.
유럽에 거주하던 시절 중고서점에서 구한 포르노라그라피, 매거진, 동화책, 도감 등 다양한 시각을 가진 이미지를 혼재해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재탄생 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한국적인 맥락에서 작업을 해보고자, 오로지 당근마켓과 한국 중고서점에서 구한 책들만 선정해 작업의 재료로 선택했다. 당근마켓 같은 플랫폼을 통해 한국의 흔한 가정집에서 구할 수 있는 어린이 용 책들을 보며, 한국 사회 특유의 어린 소녀들의 욕망을 엿볼 수 있었다. 인정받고 싶고, 남에게 지고 싶지 않고,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예쁜’여성처럼 되고 싶은, 혹은 그래야만 하는 모습 등 어린 소녀들의 들끓는 욕망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한편 그 욕망이 또 한번 통제되는 모습 또한 볼 수 있었다.
나는 여성의 욕망이 터부시는 되는 만큼 종종 ‘더러운 것’으로 쉽게 치부된다고 생각한다. 성적욕망을 드러내는 여성을, 물질적 욕망을 가진 여성을 우리는 쉽게 낙인 찍곤 한다. 그리고 한편으로서는 실제로 욕망이라는 것은 적나라하고, 낯설고, 역겹거나 더러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눈을 돌리고 싶을 정도로 더럽지만, 다시 한번 보고 싶은 그런 것이 욕망의 이미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의 작업이 낯선 이미지로 느껴지길 바란다.
어린 시절 애완 펭귄이 갖고 싶었던 나머지, 그림으로 그려놓고 간절히 빌었던 적이 있다. 그 그림 속의 펭귄이 나와주길 바랐다. 종이에 있는 이미지들을 오리는 작업의 과정에서 그 때가 떠오른다. 종이에 있는 이미지를 오려내면 마치 내 것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징그러운 해충도, 아름다운 집도, 반짝이는 보석도 2차원 종이에서 오려내면 마치 나에게로 오는 기분이 든다.
욕심처럼 덕지덕지 붙여놓은 수집한 이미지들이 벽 한 공간을 꽉 채우며 사람들에게 욕망의 이미지로 압도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 전시에 모인 4명의 작가들과 처음 만난 날 깨어진 컵에서 쏟아져 내린 물처럼, 축축하게 젖은 욕망에 대해서 시각작업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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