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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 Travail/姦 ≪살풀이≫

살풀이 <우리는 오늘 행복하고 용감했다> - 작가노트

작가 노트

 

 

미친 여자, 사라진 여자, 유령이 된 여자, 보이지 않는 여자, 소외된 여자에 대해 생각한다.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 대한 애정이 내 작업의 원동력이다.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 하고 그들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
사라져 버린 여자들이 이승도 저승도 아닌 어느 한 가운데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

 10
년 전 나는 한 기사를 읽었다.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 10대 여성 2명의 동반자살에 대한 글.
오늘은 행복하고 용감했다.”
그들이 남긴 유서의 전문이었고 나는 이 문장을 10년간 간직했다.

 
바로 사랑을 떠올렸다.
남성에 비해 배제된 존재인 여성, 그리고 청소년인 그들이 세상이 등질 만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사실 너무 많은 이유가 떠올랐지만 또 바로 성소수자가 떠올랐다. 소수자의 소수자의 소수자
그들의 죽음의 이유가 금지된 사랑에 의해서라고 바로 떠올려 버리는 것은 다시 또 그들의 죽음을 납작하게 해석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했다.

 10
년 간 간간히 그 문장이 떠오를 때 마다 그들의 죽음에 대한 기사를 다시 찾아보았다.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죽음에 대해 상상해 보려고 헤아려 보려고 할 수록 그 기사는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들이 자신들의 죽음을 파헤치지 말라고, 조용히 잠든 채로 내버려 두라고, 소재거리로 이용하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다.

 
작업을 시작하고 그들의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에 내가 마음대로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뒤로 얼마 전 별 기대없이 다시 한번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 이번엔 기사가 너무 쉽게 찾아졌다. 묻고 싶어졌다. 왜 나는 당신들을 우연히 보게 된 것일까? 수많은 자살, 수많은 동반 자살 가운데 전혀 화제가 되지 않았던 두 소녀의 자살 사건이 어째서 우연히 내게 다가왔을까?

 
그 두 소녀가 죽음을 결심한 계기는 무엇일까? 유서에는 뚜렷한 동기를 찾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동반자살이라는 극적인 상황을 보다 더 극적으로 만들었다. 나는 오랜 고민을 거듭한 끝에 딱히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사에서는 학교 부적응이라고 결론지었지만 사실 알 수 없다. 죽음을 선택한 이유를 당사자조차 마지막 순간까지 모를 때도 있지 않을까. 게다가 혼자서도 아니고 타인과 합의한 끝에 같이 죽는 길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죽음 끝냄을 통해 행복용감을 이야기하는 이 동반 자살이라는 행위가 역설적이라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많은 동반자살이 대부분 손을 잡거나 물리적인 힘으로 손을 맞잡게 한 뒤 행해진다는 사실도 알았다. 이 결속력 또한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나의 작업 속 소녀들은 모두 손을 맞잡고 맞닿아 있다.

 

 

두 소녀는 친절하지 않다. 그 둘은 유서에 죽음의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저 그 둘의 하루가 행복하고 용감했을 만을 말한다.
 
불친절한 유서를 보면서 그 나이 대 소녀들이 가진 공격성에 대해 생각했다. 소녀들은 분명히 공격성을 가지고 있으나 사회적으로 억누르도록 교육 받는다. 그리하여 수동 공격적이거나 안으로 파고들어 스스로에게 공격성을 내비치기도 한다. 여러가지 방법의 자해가 대부분 소녀들에게 벌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리라. 외부로 분출하고 싶었던 공격성이 세상을 향하지 못 하고 안으로 파고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들의 죽음이 그저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처연하고 슬프거나 쓸데없이 아름답게 포장되지 않기를 바란다. 말 그대로 용감한 행위였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서에 씌어진 대로 행복하고 용감하기위한 선택이었다고 존중한다.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기사 속 소녀들이 투신한 공간이었다. 학교 옥상이었을까, 아파트였을까, 어느 빌딩이었을까. 그렇게 뛰어내린 소녀들은 도시의 어느 곳에도 있을 수 있다고 상상했다. 그들이 부유하는 도시를 상상한다.
 
나는 프레임 속에 다시 한번 여자들을 가두는 것을 좋아한다. 대상화 되었다기 보다는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마치 영정사진처럼. 사회적인 시선은 죽은 소녀들을 그저 차가운 시체나 음습한 귀신으로 만들어 버리겠지만, 나는 그들이 무엇보다 뜨겁게 불타올랐으리라고 생각한다. 동성애를 암시하는 동반자살, 유아도 성인도 아닌 청소년기의 소녀들은, 터부를 상징하는 교회와 유년시절을 상징하는 목마도 태워버릴 수 있는 힘이 있으리라고 상상한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린 그들의 죽음에 대해 기록하며 이름 없이 세상을 떠나간 수많은 여성들에게 뒤늦게나마 다른 형태의 진혼곡을 불러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