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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 Travail/ANGE NOIR 타락천사

ANGE NOIR STATEMENT

주체적 성적 욕망이라는 함정

 

정 두리

 

 

 여성의 성적 욕망은 숨겨야 하는 것, 여전히 터부시되는 것이며 동시에 비주체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여성의 주체적 성적 욕망은 숨겨야 하지만, 여성의 육체는 남성 중심적 사회 안에 소유된 채 대상화되고, 소비되고, 어떤 순간엔 공격받고 있다.

남성 중심적 시각의 포르노그라피에 노출되어 자라온 세대에게 주체적 성적 욕망이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일까?

과연 나의 주체적인 성적 욕망은 내 의지로 만들어진 것일까? 이런 의문으로 나의 성적 욕망에 대해 들여다보았다.

 

 성적으로 폐쇄적인 한국에서 여성으로서 자란 나의 어린 시절은, 성에 대해 터부시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동시에 나의 성을 판매해야 한다고 은밀히 압박받기도 했다. 그 안에서 나의 주체성을 지킬 수 있는가가 나의 열악한 소녀 시절의 관건이었다.

 

 그것은 비단 소녀 시절의 고민에서 끝난 게 아니었다. 현재 30대 여성이 된 나도 여전히 나의 주체성을 위협받고 있다.

점점 더 여성이 살기 어려워지는 사회구조 속에서 내가 어떤 신념을 가졌든 여성에겐 성을 파는 것이 가장 적합한 일이라고 세상은 계속 압박한다. 이것은 내가 여성으로 사는 한, 죽을 때까지 나를 압박 하리라 생각하면 두렵다.

길거리에 버젓이 놓여있는 성매매업소 간판들, 구인 사이트에 제일 많이 보이는 성매매 알선들, 남자의 돈을 받아 편하게 사는 듯이 여자를 그리는 미디어들, 남성에 의한 성 착취와 강간에 관대한 사법체제, 가부장제에 자신을 파는, 혹은 팔길 원하는 여성상들, 그런 것들 말이다.

 

 재난, 전쟁, 가난 같은 위급한 상황에서, 나의 성은 가장 먼저 약탈당하는 가장 취약한 사유재산 같이 느껴진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온 나는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나에게 여성의 성은 여성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느껴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의 주체적 욕망에 대해서 늘 고민하고 직시하려 노력해왔다. 이 작업은 나의 그런 노력이자 행동의 일부이다.

 

 

 나는 꽃처럼 피어나는 나의 욕망을 꿈꿨다. 봉오리를 틔워 스스로 활짝 피워내는 꽃을 상상했다.

무서울 정도로 알록달록하고, 징그러울 정도로 생명력 있는 꽃. 범접할 수도, 관상용으로 꺾을 수도 없는 꽃.

 

 

나의 욕망이 그렇길 바라왔다.

 

자아가 지워진 듯 얼굴은 보이지 않는 소녀의 신체는, 그렇기에 다른 수많은 소녀의 욕망을 대변할 수 있다.

얼굴이 지워졌기에 작가 본인의 몸일지, 구글에서 찾은 어떠한 이미지일지, 고용한 모델의 사진일지, 주변 지인일지 알 수 없다. 교복은 유일하게 일부 동아시아 10대 여성들에게만 강요된 유니폼이다. 여성의 몸을 통제하며, 또 은밀히 대상화하고 페티시 화 시키는 교복은 나의 10대 시절을 대변한다. 성적으로 순결하고 엄숙할 것을 강요하며, 동시에 성적 호기심의 대상이자 페티시의 대상이 되는 교복은 내가 한국에서 보낸 10대 시절 내내 나의 몸이 나의 것이 아닌, 남성 권력에 의해 통제되는 도구라고 느끼게 해주었다.


이 콜라주 작업에 쓰인 이미지는 뒤섞여 있다. 주말마다 가던 프랑스 벼룩시장에서 구할 수 있었던 헌책들(식물도감, 인테리어 잡지 등)과 인터넷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포르노 이미지 그리고 셀프 포트레이트가 뒤섞여 있다.
가장 객관적인 이미지를 싣고 있는 정보성 잡지, 도감 등과 남성적 시선으로 빗어진 포르노 이미지, 그리고 내가 직접 제작한 이미지가 뒤섞었다. 그리고 나의 이전 작업이었던 여성이 직접 만드는 도색잡지 컨셉의 아트북 <젖은 잡지>의 이미지도 차용되었다. 그것은 나의 디렉션 아래에 만들어진 창작물이고 나는 그것을 또다시 해체하고 재해석한다.
 
이 출처가 여러 가지인 이미지들은 각자 가지고 있는 이미지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이 콜라주에 이용된 이미지의 시선은 어떠한 곳에도 편중되지 않는다. 남성적 시선(포르노그라피)과 여성적 시선(내가 제작한 이미지), 그리고 정보전달에 목적을 둔 이미지가 혼재되어 결국은 여성의 성적 욕망을 탄생시킨다.

목적이 서로 다른 이미지들이 나의 통제하에 혼재되어 나의 시선으로 재해석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나는 기존에 있는 이미지들을 조합하는 콜라주라는 매체를 사용한다.


 
여성이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성적 욕망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사회였다면. 내 욕망이 다른 것 보다 존중받는 사회였다면 어땠을까? 마치 지금의 남성의 성처럼 말이다. 종종 그런 상상을 해본다.